경향, 20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 정정⋯ ‘나 몰라라’ 언론도

  • 6개 매체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 10여 개, ‘유해성 인정’ 법원 판결 뒤에도 방치 확인
  • <뉴스어디>, 경향⋅동아⋅머니투데이⋅문화⋅서울신문⋅파이낸셜뉴스에 조치 요청
  • 경향,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방법 사실과 달라⋯사과” 20년 전 기사 정정
  • 동아∙서울신문 ‘묵묵부답’, 머투∙파이낸셜뉴스 “삭제할 것”, 문화 “작성한 기자 퇴사⋯정정 못 해”


“솔직히 말이죠. 언론사가 그 기사(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가 아직 남아있다는 걸 모를까요?”

“언론사가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홍보 기사를 삭제하길 바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자녀의 부모이자 피해 당사자인 이은영 씨는 이렇게 반문했다. 이 씨는 “뭐가 문제인지 알지만 안 고쳐도 나(기자)에게, 언론사에 피해가 오지 않으니 기사가 방치돼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뉴스어디>는 이 씨가 수집한 과거 기사를 단서로 가습기 살균제가 개발된 첫해인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최소 10년간 여러 언론이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무해하다” 등의 내용으로 쓴 살균제 홍보 기사가 지금까지 방치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씨 말대로 언론사들이 ‘자신들이 쓴 살균제 홍보 기사가 남아있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문제의 기사들은 게재된 지 최대 20년이 넘어 언론중재위원회(언론중재위) 조정 신청이 불가능했다. 언론중재위는 6개월 이내 보도만 다루기 때문이다.  

자율심의기구인  신문윤리위원회,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등에 심의 신청, 불만 제기 등도 불가능했다. 이 기구들도 게재된 지 최대 90일 이내 기사만 접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의 결과가 나온다해도 언론사가 받는 불이익은 없다. 특히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는 <뉴스어디>가 ‘광고주⋅언론사 항의로 비공개한 ‘기사형 광고’⋯ 뉴스어디가 전면 공개’에서 고발했듯 ‘광고주와 언론사의 항의’ 탓에 심의결과를 공개하지도 않아 기록 차원의 의미도 거의 없다. 

<뉴스어디>는 고충처리인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고충처리인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방송사, 신문사 등이 자율적으로 언론피해 예방과 구제를 담당하게 하는 제도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 생겼다. 법에 따라 언론사는 고충처리인의 지위, 임기, 활동 사항 등을 매년 공표해야 하고, 고충처리인을 두지 않을 시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고충처리 대상 기사의 보도 시점에는 제한이 없으며, 메일이나 우편 등으로 접수해 수용 여부를 비교적 간편하게 회신 받을 수 있다. 3일 이내 답변하겠다고 공지하는 언론사도 있다. 

<뉴스어디>는 살균제 홍보 기사가 현재도 온라인에서 검색이 되는 총 6개 매체(경향신문,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문화일보, 서울신문, 파이낸셜뉴스)에 “정정보도 등 조치를 고려할 생각은 없냐”는 내용으로 고충처리를 요청했다. 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에 걸쳐 이메일로 물었다. 

결과가 나왔다. 6개 매체 중 3개 매체(머니투데이, 문화일보, 파이낸셜뉴스)는 기사를 삭제하겠다고 회신했고, 2개 매체(동아일보, 서울신문)는 답변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유일하게 독자에게 사과하며 정정보도 했다.

뉴스어디는 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에 걸쳐 총 6개 매체에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 등 조치를 고려할 생각은 없냐"는 내용으로 고충처리를 요청했다. 그 결과, 6개 매체 중 3개 매체는 기사를 삭제하겠다고 했고, 2개 매체는 답변하지 않았다. 경향신문만이 독자에게 사과하며 정정보도 했다.
뉴스어디는 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에 걸쳐 총 6개 매체에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 등 조치를 고려할 생각은 없냐”는 내용으로 고충처리를 요청했다. 그 결과, 6개 매체 중 3개 매체는 기사를 삭제하겠다고 했고, 2개 매체는 답변하지 않았다. 경향신문만이 독자에게 사과하며 정정보도 했다.

동아일보와 서울신문은 고충처리 요청을 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인 2월 20일까지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서울신문은 ‘고충처리인’ 홈페이지에 “청구신청을 접수받은 시각으로부터 3일 이내에 신청인에게 그 결과를 회신하게 된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지키지 않았다. 안내된 고충처리인 번호로 연락하자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지 않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고충처리인 번호를 다시 확인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회신은 없었지만 “무해한 항균제”라고 쓴 기사는 현재 삭제됐다. 

동아일보는 ‘고충처리인 제도’ 홈페이지에 안내된 번호로 연락하니 “어느 부서로 연락해 드릴지”를 물었다. 고충처리인 번호라고 나온 번호는 회사 대표번호였다. 이후 연결된 지식서비스센터 직원은 “(고충처리 내용을) 담당부서인 경제부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언론중재법’에 따르면 언론의 침해 행위 조사는 고충처리인의 직무인데, 해당 기사 담당 부서에 요청서를 전달한 것이다. 동아일보 직원은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 후에 진행하는 걸로 알고 계시면 된다. 직접 회신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취재진이 “홈페이지에 따르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신청인에게 결과를 회신해 드린다고 돼 있다”고 항의하자 “회신받게 다시 한 번 전달해 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회신은 없고, “인체에 무해한 제품” 이라는 기사는 여전히 인터넷상에 남아 있다.

동아일보, 서울신문 고충처리 접수 안내 페이지
동아일보, 서울신문 고충처리 접수 안내 페이지

머니투데이와 파이낸셜뉴스 고충처리인은 고충처리 신청을 한 다음 날인 19일 “기사를 삭제하겠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머니투데이는 “해당 기사는 담당 데스크와 검토 후 삭제 조치했다”라고 했고, 파이낸셜뉴스는 “해당 기사를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라는 입장을 보냈다. 

두 매체 모두 삭제 사유 안내는 없었다. 파이낸셜뉴스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드러나기 전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고, 재차 메일을 보내와 “이 같은 사례를 꾸준히 파악하여 기사를 삭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머니투데이와 파이낸셜뉴스는 안내한 대로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를 삭제했다. 

문화일보 고충처리인인 장재선 전임기자는 고충처리요청서를 보낸 지 18일 만에 “살균제 홍보 기사를 삭제 예정”이라고 전화로 알려왔다. 정정보도가 아닌 삭제를 결정한 이유를 묻자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 퇴사해 연락이 안 되고 있다. (당시엔) 그 회사에 신뢰를 갖고 보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유일하게 정정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가습기 사흘에 한번 꼭 청소>(2004년 12월 1일)에서 “가습기 전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방법”,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1,000㎖ 3,950원선)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550㎖l 2,200원선) 등이 있다”고 홍보했다. 경향신문은 <뉴스어디>의 고충처리 요청 메일에 답신을 보내 “더 무섭고 어렵게 기사를 쓰도록 노력하겠다. 정정보도 문구를 해당 기사에 삽입했다”라고 안내했다. 

현재 해당 기사 하단에는 “기사에 언급된 이 제품들에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음을 명시합니다”, “기사 표현대로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이 아니므로 정정합니다.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이 달려있다.  

경향신문은 ‘가습기 메이트’를 홍보한 <가습기 사흘에 한번 꼭 청소>(2004년 12월 1일) 기사 하단에 “기사 표현대로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이 아니므로 정정합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적은 글을 달아 보도를 정정했다.
경향신문은 ‘가습기 메이트’를 홍보한 <가습기 사흘에 한번 꼭 청소>(2004년 12월 1일) 기사 하단에 “기사 표현대로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이 아니므로 정정합니다.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을 달아 보도를 정정했다.

전문가들,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 삭제하지 말고 실수 인정해야”

살균제 피해자 이은영 씨는 언론사들이 문제의 기사를 삭제하는 행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제조사인) SK 같은 경우 자기에게 불리한 기사를 모조리 삭제해서 증거 수집에 문제가 있어 화가 났다”고 했다. 몇몇 전문가도 “삭제보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심영섭 한국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기사심의분과위원회 위원은 1월 18일 <뉴스어디>와의 통화에서 “해당 기사 밑에 판결 요지 등을 적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사를)삭제해버리면 (내용을)못 보지만, (판결문 요지 등을)적어둔다는 것은 실수를 저질렀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록이라는 신문의 역할에 더 부합한다”고 말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케)는 법적 규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변호사는 <취재하지 않는 뉴스 다루는 법>(2022년 6월 2일)에서  “‘가습기 살균제’ 같은 기사형 광고를 취재도 하지 않고 기사 형태로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맞다. 기사형 광고에 대해 ‘의도적으로 소비자가 표시·광고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에 형사처벌할 수 있는 표시 광고법이 이미 발의돼 있다”라고 말했다.

취재 박채린(rin@newswhe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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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1
2 years ago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전에 “가습기 내부에 세균이 우글거린다”고 보도한 언론사들이야말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무책임한 보도의 전형입니다. 세균이 모두 병원균이 아닙니다. 세균의 99%는 무해합니다. 가습기에서 발견된 세균이 인체에 유해한지, 병을 일으키는지를 검토도 안하고 위험한 것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한 언론들이 있었고 그런 보도 후에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겁니다. 저 가습기 세균 보도한 무책임한 기레기들도 큰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2580
2 years ago

의미 있는 기사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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