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5일,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수사와 민관합동조사단 검증이 진행되는 가운데 엉뚱하게 조사 대상인 쿠팡이 유출자를 특정하고, 증거 자료에 접근해 이른바 ‘셀프조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쿠팡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에서 유출자가 내려받은 정보는 극히 일부이며, 외부 전송 등 추가 유출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대응을 맡고 있는 과학기술정통부는 “확인 안 된 주장”이라며 “일방적으로 대외에 알린 것에 대해 쿠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발표했다. 쿠팡은 다음 날 “정부 지시에 따라 진행한 공조수사”라고 주장했으나 수사를 맡은 경찰은 “쿠팡과 경찰은 사전에 접촉한 적 없다”고 밝혔다.

쿠팡이 보도자료를 발표한 25일 오후 3시 37분부터 관련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2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른 공조수사”였다는 추가 보도자료도 기사화됐다. 뉴스어디는 보도자료 발표 직후부터 24시간 동안 154개 매체가 생산한 관련 기사 586건을 분석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25일 쿠팡 보도자료 제목에 포함된 키워드 ‘쿠팡’, ‘유출자’를 모두 포함한 기사를 26일 오후 11시 기준으로 추출했다.
그 결과 상당수 언론사가 쿠팡의 일방적 주장을 확인된 사실처럼 보도하며, 기업 홍보성 문구를 포함한 쿠팡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기사를 반복적으로 생산했다. 쿠팡이 조사 과정에서 투입한 보안 업체의 기술력을 부각하며 축소ᐧ은폐 의혹이 차단됐다는 내용의 기사, 극우 유튜버의 ‘중국 연관설’을 여과 없이 전한 매체도 확인했다.
쿠팡 보도자료만 배껴 쓴 기사 전체 기사 중 44%
쿠팡의 보도자료 발표 직후 24시간 동안 나온 관련 기사 총 586건 가운데 쿠팡 보도자료만을 받아쓴 기사는 전체 기사의 약 44%가량인 257건이다. 쿠팡 측 주장만 담아 제목만 내보낸 속보는 포함하고 중복 기사는 제외했다. 수사ᐧ조사 기관에 최소한의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보도가 절반 가까이 됐다.
뉴스어디가 분석한 기간에 관련 기사를 네이버에 송고한 매체는 총 154개다. 이 가운데 보도자료만 받아쓰고 정부·경찰 등의 추가 확인 취재가 없는 기사 수는 뉴스1, 연합뉴스, TV조선, YTN이 각각 6건으로 가장 많았다. 같은 기간 정부, 경찰, 전문가 등을 통해 쿠팡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한 곳은 동아일보, 한겨레, SBS 등에 그쳤다.
쿠팡 ‘셀프조사’ 참여 업체에 “독보적 권위자”,“‘축소ᐧ은폐’의혹 원천 차단”
쿠팡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쓰다 보니, 기업 홍보 문구도 그대로 기사화됐다. 쿠팡은 보도자료에서 “전 세계 최상위 3개 글로벌 사이버 보안 업체”에 조사를 의뢰했다고 발표했다. ‘셀프조사’에 불과하지만 조사 신뢰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이 내용을 그대로 옮겨 여러 매체가 “최상위 글로벌 사이버 보안 업체”(한국경제), “세계 상위 수준의 외부 전문기관”(머니투데이), “전 세계 최상위 3개 글로벌 사이버 보안 업체”(데일리안)가 조사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쿠팡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조사를 받아야 할 대상인 쿠팡이 조사 업체를 선정하고 증거 자료에 접근했다. 조사 과정의 독립성과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일부 보도는 오히려 조사에 참여한 보안 업체의 ‘우수성’을 주장한 쿠팡 발표를 밀어줬다.
한발 더 나아가 이 보안 업체 우수성을 부각하는 기사도 나왔다. 머니투데이와 뉴스1 등을 계열사로 둔 미디어그룹 브릴리언트 코리아가 소유한 머니S는 <쿠팡, 포렌식에 ‘구글·MS 파트너’ 보안 3사 투입… “결과 신뢰도 확보”>(12.25.)에서 쿠팡이 언급한 업체들에 대해 “해킹 사고 추적 분야의 독보적 권위자”, “국내외 주요 기업 인프라 보안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이 포렌식 작업에 참여했다면 객관성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자체 조사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축소 은폐’의혹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강수”라고 설명했다.

쿠팡 조사 띄우기 “영원한 은폐 시도에 쿠팡 대응은 집요했다”
쿠팡 보도자료를 확인된 사실처럼 보도한 매체도 있다. 앞서 쿠팡 자체 조사에 참여한 보안업체의 ‘우수성’을 부각한 기사를 쓴 머니S는 <범행 노트북 강물에 버렸지만… 쿠팡 “전문 잠수부 동원해 찾았다”>(12.25.)에서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 조사 과정을 쿠팡의 적극적 대응 사례로 보도했다.
그는 범행에 사용한 자신의 ‘맥북 에어’ 노트북을 물리적으로 파손한 뒤, 벽돌과 함께 쿠팡 로고가 새겨진 에코백에 담아 인근 하천에 투기했다. 물속 깊이 가라앉혀 영원히 은폐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쿠팡의 대응은 집요했다.
– 머니S <범행 노트북 강물에 버렸지만… 쿠팡 “전문 잠수부 동원해 찾았다”>(12.25.)
같은 매체가 보도한 기사 <보안키 탈취부터 강물 투기까지… 쿠팡이 밝힌 사건의 전말>(12.25.)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시간 흐름에 따라 재구성했다고 전제한 뒤, “이번 정보 유출 사태는 전직 직원 A 씨의 단독 소행으로 밝혀졌다”고 썼다. 그러나 쿠팡은 고객 정보 유출을 알리는 협박 메일을 보낸 인물과 쿠팡이 특정한 유출자가 같은 사람인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고, 경찰은 앞서 “협박 메일에 사용된 IP가 2개”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독 소행으로 밝혀졌다’는 표현은 쿠팡의 일방적 주장을 단정적으로 옮긴 것이다.
머니S와 같은 계열사인 뉴스1은 <쿠팡, “개인정보 3000개만 저장”…정부 “확인 안 된 주장”(종합)>(12.25.)에서 쿠팡 보도자료를 근거로 ‘가능성’을 세 차례 언급했다. 쿠팡 조사 결과가 신뢰할 만하며 피해 규모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을 반복적으로 전한 것이다.
“글로벌 사이버 보안 업체와 진행한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초 우려와 달리 피해 규모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저장된 정보 역시 모두 삭제·파기된 것으로 확인돼, 당초 제기됐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피해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유출자의 진술 내용과 외부 보안업체가 진행한 포렌식 수사 결과가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 은폐나 축소 가능성도 낮을 가능성도 나온다”
– 뉴스1 <쿠팡, “개인정보 3000개만 저장”…정부 “확인 안 된 주장”(종합)>(12.25.)
언론, 쿠팡의 위기관리 마우스피스로 전락
쿠팡 보도자료를 확인된 사실처럼 보도한 사례는 더 있다.
매일경제ᐧTV조선ᐧ연합뉴스TV 등은 “유출자는 또 사태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한 후 저장한 정보를 모두 삭제했으며 고객 정보 중 제3자에게 전송된 데이터는 일절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썼다. 쿠키뉴스는 “조사 결과 해당 정보는 제3자에게 전송된 사실이 없는 걸로 파악됐다”고 썼다. 모두 보도자료의 주요 내용을 단정적 표현 그대로 옮겼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둘러싼 정부 대응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음모론도 등장했다. 천지일보는 25일 자 보도에서 “쿠팡의 고객 정보 유출자가 중국인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부의 강경 대응 배경에 중국 업체와의 경쟁 구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며, 한 극우 유튜버의 주장을 사실상 그대로 전했다.
쿠팡의 ‘셀프조사’ 보도자료 관련 기사들은 당국의 수사와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서 해당 기업의 홍보 전략에 따른 일방적 발표가 어떻게 ‘사실’로 유통되는지를 보여준다. 다수 매체는 확인되지 않은 기업의 주장을 검증 없이 옮기며, 보도자료를 보도기사로 탈바꿈했다. 그 과정에서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검증과 문제 제기는 빠졌다. 일부 보도는 쿠팡 주장을 옹호해줄 ‘셀프조사’ 참여 업체의 신뢰도를 부각하고, 음모론까지 중계했다. 결과적으로 언론은 쿠팡의 위기관리 메시지를 전달하는 홍보 창구로 전락했다.
취재: 박채린 (rin@newswhere.org)
카피 에디터: 조연우
받아쓸게 없어서
당사자(쿠팡)가 불러준 대로 쓰다니…
광고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