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느닷없이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급부상했다 사라진 인물이 있다. 5월 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5월 10일에 퇴장한 한덕수다. 8일간 유력 후보로 대접받았지만 지금은 존재감 ‘0’이다. 경찰 수사와 출국금지라는 단어와 함께 이름이 오르내릴 뿐이다.
‘한덕수 대망론’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 결과도 무시한 이른바 친윤 세력의 공작에서 비롯됐지만, 근원을 따져보면 언론이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 불법계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덕수가 집권 여당 대선후보가 될 뻔한 사건은 한국 정당사에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일이다.
내란 동조 혐의 피의자 한덕수가 헛된 꿈을 꾸게 만든 건 바로 언론이다. 조선일보, 채널A 등은 이른바 ‘한덕수 총리 차출설’을 퍼트리며 영어 잘하는 통상 전문가라는 점 등을 강조했다. 초기에는 지지율이 미미했으나 약 2주 만에 30%대까지 치솟았다.
뉴스어디는 ‘한덕수 대망론’을 만든 주요 시점별 언론 보도를 모아, 각 매체가 어떤 방식으로 한덕수를 부각했는지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등록된 기사 중, 불법계엄 선포 직전부터 한 전 총리가 출마 선언을 하기 전인 5월 1일까지의 보도다. 계엄 이후 보도는 ‘한덕수’가 포함된 기사 중 ‘대망’, ‘차출’, ‘영입’, ‘출마’ 중 하나의 키워드가 함께 들어간 기사를 선별했다.
0. 불법 계엄 전
“요즘은 한동훈도 이재명도 아니고 한덕수 인기가 최고”라고 하자, 76세의 노총리가 “어이구!”하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9월 30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한덕수 당시 총리 인터뷰 기사 첫 문장이다. 이때는 당시 대통령 윤석열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바닥을 찍고, 10ᐧ16 재보궐 선거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이 기사는 “최근 대정부 질문에서 “미몽에서 깨어나시라” “정치의 힘은 모욕과 능멸에 있지 않다고 호통쳐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라며 한 총리를 띄웠다. 또 “레프트(좌)와 라이트(우)는 없다. 오로지 국가를 잘되게 하느냐, 못되게 하느냐의 업(위) 또는 다운(아래)만 있다”는 발언도 인용했다.

이 기사는 한덕수의 입을 통해 윤석열 정부 실정을 덮는 내용을 주로 다룬다. 의료 대란에 대해 기자가 “큰 사고 없이 (추석)연휴가 지나갔다” 라고 하자, 한 총리는 의료 대란을 전공의와 과거 정부 탓으로 돌렸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자도 나왔지만 언급하지 않았다. 한덕수 총리는 또 김건희의 명품 가방 수수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도 하셨다. 그 정도면 국민께서 이해해주셔야” 라고 했고, 윤석열을 “대인이다. 제일 개혁적인 대통령”이라고 비호했다.
‘한덕수 띄우기’도 있다. “소통을 중시”하고 “달변에 유머가 넘치는”이라 했고,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나”, “공직에 전성기가 있었다면?” 같은 ‘자기 자랑’ 시간도 줬다. 기자는 “민생 현장에 있던 총리 모습이 좋더라” 라고도 했는데, 8개월 뒤 대권 예비후보가 된 한 전 총리는 민생 현장 쪽방촌을 찾았다. 주민들은 “(한 후보가) 사진만 찍고 갔다”고 했지만, 이 부분을 지적한 기사는 거의 없었다.

그는 진즉에 물러나야만 했던 총리다. 2023년 9월 이태원 참사, 잼버리 사태 등으로 국회가 해임안을 통과시켰지만 윤석열이 거부했다. 또 지난해 4월 총선 참패 후 사의를 표명했지만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 어쩌다 최장수 총리가 됐다. 12.3 불법 계엄 이후에도 총리 자리를 지켰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다.
한 전 총리는 내란 혐의 피의자인 데다 계엄 직후 행적도 다 드러나지 않았다. 27일 뉴스 토마토 보도에 따르면,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 직전 포고령 문건을 받아 확인하는 장면이 대통령실 CCTV에 담겼다고 한다. 그간 한덕수는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서 계엄과 관련된 문건을 보거나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1. 윤석열 탄핵 직후
채널A·조선일보, ‘한덕수 대망론’ 확산의 시작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당일, 채널A가 ‘한덕수 대망론’을 처음 언급했다(네이버 기준). <한덕수 대망론?…국민의힘 일각선 출마 요구 움직임>은 “개헌 이룰 적임자”, “통상 전문가”, “정책으로 압도” 등 한덕수에 대한 익명의 국민의힘 의원 평가를 기사화했다. 긍정 일색이다. “양쪽을 아우를 수도 있는 후보라는 의견도 나온다”처럼 기자 의견인지 국힘 내부 의견인지 출처가 불명확한 문장도 있다.

“트럼프 관세폭탄에 대처할 수 있는 통상 전문가이자, 국정 전반을 가장 잘 꿰뚫고 있다”
“탄핵 찬반으로 지지층이 나뉜 상황에서 양쪽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후보라는 의견도 나온다”
“대정부질문 때 야당과 맞서는 걸 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도 잘 붙을 것 같다”며 “정책으로 압도하지 않겠냐”
“대선과 총선 주기를 맞춘 개헌을 이룰 적임자라는 의견도 있다”
채널A는 “선거 관리 역할을 저버리고 선수로 뛰는 게 부담”일 거라는 우려를 덧붙였다. 이는 한 총리와 국민의힘 의원이 느낄 우려다. 불법계엄에 연루됐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라는 헌재 결정을 외면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인물이 ‘깜짝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는 찾을 수 없다.
이튿날 주말에도 채널A는 <민주 “尹 참모 사표 수리”…‘한덕수 대망론’ 견제>(4/5), <빨라진 대선 시계…후보들 움직임은?>(4/5), <한덕수 침묵에도…국민의힘 일각 “대선 출마 설득해야”>(4/6), <민주당 “한덕수, 집중해야 하는 일은 민생” 주문, 왜?>(4/6)에서 ‘한덕수 대망론’을 다뤘다.
채널A의 이 기사들은 대통령 대행이던 한덕수의 주말 일정을 살피고, 국힘 내부 목소리(“중도가 뽑을 인사를 내세워야” 등)를 재차 보도했으며, 민주당이 그를 겨냥해 산불 대응 등 민생에 집중하라고 한 것에는 “‘한덕수 대망론’을 차단하려는 뜻도 담겼을까요?” 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한 당시 총리의 몸값을 올렸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조선일보도 가세했다. <안간힘 쓰는 국민의힘⋯ ‘대선 단합’ 강조>(4/7)는 국민의힘 의원 총회에서 “관세 문제를 포함한 한미 관계를 안정적으로 풀어나갈 적임자는 경제와 통상 전문가인 한 권한대행밖에 없다”는 말이 나왔다며 ‘대망론’을 재생산했다.
하루 뒤에 보도한 <윤 재구속, 김건희 특검, 내란 공범 수사…’적폐청산 시즌2’ 예고>(4/8)는 한 발 더 나갔다. 한 대행 등을 ‘내란 동조 혐의’로 수사하라는 건 ‘정치 보복’, ‘사정 광풍’이라는 취지다. 한덕수는 윤석열 정권 국무총리로 내란 혐의 관련 수사를 피할 수 없었다. 보도 시점에도 피의자 신분이었고, 현재도 수사 대상이다. 정당한 수사를 두고도 보도를 통해 ‘정치 보복’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운 건 한덕수에게 ‘방패막이’였다.

채널A와 조선일보 보도 이전 한덕수 관련 보도는 선고일 지정 시점, 계엄 관련 ‘연대 책임’ 대상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2. 트럼프발 관세 파동
조선, 민주당 ‘신중론’ 주장에 “한 대행 지지율 오를까 걱정되는 것”
4월 8일, 미국이 고율의 상호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 시점에 한덕수와 트럼프가 통화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훌륭한 통화를 했다”고 했지만 국내에선 우려가 쏟아졌다. 6개월 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뒤집고 관세와 연동할 뜻을 비쳤고, 사업비 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알래스카 LNG 개발도 거론했기 때문이다. 한덕수 대행은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며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냈다.
대다수 전문가와 민주당, 보수 신문까지 ‘신중론’을 이야기했다. 트럼프가 관세율을 번복하고 있어 그들의 전략을 더 파악해야 했다. 최우선 협상국으로 지목된 일본도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통화 후 얼마간 조선일보는 이런 우려를 외면했다. 오히려 <트럼프 1기 때도 日이 먼저 움직여 “한국, 벤치마킹해 피해 줄여야”>(4/9)는 과거 일본 사례를 들며 한 대행 ‘속도’에 발맞췄다.
영어 실력 띄우기와 근거 없는 성과 부각
관세 협상을 “국회와 협의해야 한다”는 민주당에 조선은 정파적으로 대응했다. <사설/ 관세 협상 첫 대상 된 한국, 민주당도 원 팀 돼야>(4/16)는 “민주당이 이런 얘기를 하는 진의”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한 대행의 국민 지지가 올라갈까 걱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상호 관세 부과를 유예하자 “전화 통화로 협상의 물꼬가 트였다”라며 한 대행 통화와 연관지어 사설을 썼다. 하지만 중국에만 관세를 올려 전선을 좁히려는 전략 또는 미국 주식 시장 급락이 유예의 원인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조선일보는 한덕수의 영어 실력도 띄웠다. 조선일보 <美서 먼저 전화… “韓대행 2개월이 한미관계 좌우할 수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 대행에게 “‘아름다운 영어’를 쓴다고 칭찬했다”고 썼다. 계열사 조선비즈의 <통역 쓰다 韓 대행이 직접 영어로 설명… 트럼프 “뷰티풀 잉글리시” 찬사>, TV조선 <트럼프, 한덕수 영어에 “뷰티풀”…총리실 “우호적 분위기 통화”>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한덕수 대망론’을 처음 언급한 채널A도 <트럼프, 한덕수 영어에 “뷰티풀”>을 실었다.

이후 중앙일보 <“대선에 나갈 것인가” 트럼프, 한덕수에 묻다>(4/10), 채널A <“트럼프, 한덕수 ‘유력 대선후보’로 소개받고 전화”>(4/10)는 각각 “관련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 “정부 소식통”을 출처로 “트럼프가 통화 중 한 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로부터 한 대행을 ‘유력한 대선후보’라고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보도했다. 이후 언론이 받아쓰고,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정치인 등이 출마설에 말을 얹으면서 한덕수는 하루아침에 ‘유력 대선후보’가 됐다.
3. 한덕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
헌재 임명 논란, 조선일보의 이중잣대
4월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에 이완규 법제처장을 지명했다. 한덕수가 국회 추천 몫 재판관 임명은 미루고, 대통령 몫 재판관 임명을 강행해 논란이 일었다. 임명한 인물 중에는 내란 방조 혐의 수사 대상인 이완규 법제처장도 있어 논란을 키웠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은 자제하는 것이 헌법 정신”이라던 애초 입장을 뒤집은 결정이다.
이 같은 한덕수의 ‘선택적’ 헌재 재판관 임명 논란 때도 조선일보는 편향적 보도 양상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28일 사설에서 “이런 중대 사안(대통령 탄핵 재판에 영향 미치는 국회 몫 재판관 임명)을 관료 출신 권한대행에게 결정하라며 모든 책임을 미뤄선 안 된다”라고 했으나, 올해 4월 9일 자 기사에서는 “의회 권력을 민주당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관 지명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법과 절차에 따라 임명하면 될 문제를, 조선일보는 자의적으로 사안의 중대성을 규정하고 임명 기준을 뒤집었다. 4월 10일 자 기사에서는 이완규 법제처장 임명에 대한 비판을 ‘내란 프레임 씌우기’로 규정했다.

즉, ‘한덕수 인기 최고’ 조선일보 인터뷰 → ‘내란 동조’ 혐의 숨긴 ‘대망론’ → 한덕수 내란 수사는 ‘정치 보복’ 프레임 → 한덕수-트럼프 통화 ‘띄우고’ 헌재 재판관 월권 논란은 ‘감추기’. 이런 일련의 보도가 한덕수 대행을 ‘깜짝 후보’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4. 광폭 행보
헌재 효력정지 결정, ‘광폭 행보’ 보도로 가려지다
4월 16일, 한덕수 대행의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후보자 지명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효력정지 결정을 내렸다. 한덕수의 위헌적 행위가 일부 확인된 것이다. 그는 헌재 결정 전날인 15일부터 ‘광폭 행보’를 시작했다. 15일은 광주의 한 자동차 공장과 ‘1000원 백반집’을 방문했다. 다음 날은 울산 현대중공업과 그 지역 시장을 찾았다. 같은 달 23일엔 평택 한미 연합 사령부에 갔다.
채널A, TV조선, MBN은 헌재 결정보다 한 대행 행보를 더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한덕수 대망론’을 처음 보도한 채널A는 16일 첫 번째 꼭지부터 내리 6개 리포트를 한 총리 뉴스로 채웠다. 울산 방문 리포트가 3번째, 헌재 결정이 5번째였다. 나머지는 한 대행이 보수 진영에서 지지율 1위를 했다는 내용 등이다. TV조선은 행보는 5번째, 헌재 결정은 9번째, MBN은 행보는 8번째, 헌재 결정은 24번째로 보도했다.
채널A는 광주, 울산, 평택 3차례 행보에 총 4건의 보도를 내면서 “‘경제 올인 행보”,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행보”라고 긍정 평가 일색의 내용을 실었다. 사실상 대권 행보를 한다는 비판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16일 자 기사에서 “출마설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산업 현장을 찾고 민생경제에 주력”한다며 사실상의 대선 행보에 오히려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다수 매체가 ‘한덕수 대망론’을 만들어나가면서 한덕수의 지지율은 4월 12일 한 자릿수에서 2주 만에 30%대 로 급등했다. 하지만 명분도 자격도 없는 출마 강행과 친윤을 뒷배로 한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리 다툼에 일반 당심은 등을 돌렸고, ‘내란 혐의 피의자’ 한덕수는 허망하게 퇴장했다. 유력 대선후보 한덕수는 사라졌지만 ‘한덕수 대망론’ 8일 천하는 왜 언론개혁이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취재: 박채린 (rin@newswhere.org)
카피 에디터: 조연우